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이우정관장님 글 몇 편
서울시장께 드리는 ‘도서관건축 유감’ 서울의 재발견

2007/11/2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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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께 드리는 ‘도서관건축 유감’


  저는 지난 6월말에 개관한 서울시의 한 도서관의 관장입니다.

우리 도서관은 다른 공공도서관과 비교해볼 때 규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잘 지은 건축물이 주변의 숲과 어우러져 주민들에게는 ‘가보고 싶은 도서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말이면 도시락 싸들고 도서관에 놀러오는 가족들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잘 지은 공공 건축물 하나로 인해 주민들이 행복해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민들의 세금이 잘 쓰여 졌는지를 보려면 그 지역의 도서관에 가 보라’고 말입니다. 그 덕분에 다른 자치구에서 신축도서관설계를 수주해 놓은 건축사무소와 내년에 도서관 개관을 준비 중인 관계 공무원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문객들이 쏟아내는 질문과 고민을 들으면서 순간 안타깝고 때론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급기야 서울시장께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서울 시장님이 살 집을 짓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시장님이 꿈꾸는 집의 기능들을 설계에 반영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내부 디자인도 시장님만의 아이디어를 반영시키려고 시공사에 단단히 일러둘 것입니다.

하물며 개인의 집도 그러하거늘, 어린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십만 명이 사용하는 공공도서관을 지으면서 정작 집주인(사서와 주민)은 집 내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면 이거야말로 민주사회의 블랙코미디 아닙니까?

우리 도서관을 방문했던 건축사와 관계 공무원들 사이에서 결코 사서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웠던 까닭이고, 도서관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질문만 해 대니까 급기야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이유입니다.


  현재 각 지자체 마다 준비 중인 신축 도서관들의 프로세서를 보면 일단, 설계공모 등을 통해 멋있는 조감도 하나를 먼저 결정 하지요. 도서관의 외관은 유럽, 미국 등의 선진 건축물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서관의 내부구조와 기능입니다. 도서관에 대한 경험이 없는 그들이 가볼만한 도서관 몇 군데를 돌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몇 장의 사진으로 남겨둡니다. 어릴 적에 시험 공부하러 갔던 그 아련한 추억이 오버랩 되면서 오늘날의 도서관 내부가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이때까지도 도서관 사서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도서관건물이 완공할 즈음에 가서야 운영주체인 도서관 사서직을 선발, 채용합니다. 이렇게 선발된 사서들이 드디어 신축도서관에 입성(?)하고 보면 아뿔싸! 어린이 도서실의 계단 난간은 왜 이렇게 위험한지, 엄마들이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 책 읽어 줄 수 있는 온돌방은 왜 안 만들었는지, 방음벽은 왜 안했는지, 서가 사이의 조명은 또 왜 이리 어두운지, 주민들이 모여 책 읽고 토론할 수 있는 방은 왜 없는지 등등 고칠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설계 따로, 운영주체 따로, 행정 따로... 모두가 따로 놀고 있는 현실입니다. 병원을 지을 때 의사와 간호사의 의견이 배제된 채 병상 수만 고려해서는 안 되듯이, 문화예술건물을 지으면서 실제 사용자인 문화예술인을 배제해서는 안 되듯이 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서비스의 대상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디자인해야 창의적 공간이 될 것 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책의 하중과 열람석 수만 계산한다면 서울시는 결코 뉴욕시나 일본의 우라야스 같은 도서관 명소를 보유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나아가 문화콘텐츠를 경제적 가치로 승화시키려는 서울시장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의적 공간인 도서관에 대해 무지한 시장이라는 오명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라옵건대, 지금처럼 설계와 시공이 모두 끝난 뒤에 운영주체인 사서에게 열쇠만 넘기는 이런 관행은 없어져야 합니다. 더 이상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도록 단 한 번도 도서관에 가보지 않은 건축전문가들에게 도서관건축을 맡겨서도 안 됩니다.  이후에 도서관 건축을 계획하는 자치단체가 있다면 아예 머릿속의 상상단계에서부터 방향을 잡고 계획을 짤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전문사서와 주민대표를 참여시켜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간곡히 청원하는 이유는 잘 만든 도서관이야말로 서울 시민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우정/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관장)




도서관을 보는 관점

도서관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우정 관장입니다.

그동안 건의를 해 주신 많은 분들의 답변을 대신해서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개관 초기에 저희 17인의 라이브러리언은 모름지기 공공도서관은 독서실이 아닌 자료 중심의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결의를 하였습니다. 사색과 토론을 통해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내 대부분의 도서관이 일반열람실(독서실) 중심으로 운영해왔고 독서실 문화에 길들여진 주민들이 과연 독서실이 아닌 도서관 본래의 기능을 인정해 주실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현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서울시민들이 도서관다운 도서관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탓(1차적으로 도서관을 운영해온 사람들이 반성해야할 일입니다!)에 도서관하면 의례 시험공부 하는 곳으로 각인이 되어있고 ‘도서관에 시험공부 하는 좌석이 없으면(부족하면) 도서관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공부방이 없던 가난했던 부모님세대에는 국가권력이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책을 구비하기 보다는 공부방을 만들어 줌으로써 도서관 본래의 모습을 왜곡시켰습니다. 책을 통해 생각하고 모여서 토론하며 비판하는 것을 탄압하는 대신에 개인의 시험공부를 통한 신분상승만 꿈꾸도록 서열화했고, 도서관조차 이데올로기의 한 기구로 전락시켜버렸습니다.


그것이 근대적 공공도서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제력이 나아진 -창의성과 창조력을 강조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도서관은 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들 역시도 도서관이용 행태를 보면 여전히 독서실의 좌석에 집착하고 있고, 좌석을 ‘소유’해야만 마음을 놓게 됩니다. 이는 군사독재 정권시절부터 길들여진 우리의 공부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민들은 물론 도서관도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도서관을 보는 관점(프레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이용객들이 요구하는 문제는 도서관을 ‘편의 중심의 시설(독서실)’로 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편의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니 이 부분은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즉, 거의 모든 도서관을 편의 중심의 독서실로 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독서실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 독서실은 칸막이 책상과 의자, 그리고 ‘정숙’이라는 경고문구만 있으면 됩니다.
  • 독서실은 새벽부터 경쟁적으로 좋은 자리(고정석)를 잡아 다른 사람은 앉지 못하게 영역표시를 한 다음에 ‘내가 시험공부 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관리인에게 강하게 항의합니다.
  • 독서실은 입시정보, 각종 수험서 및 약간의 외국어자료만 갖추어 놓으면 됩니다.
  • 독서실은 남학생과 여학생, 어린이와 성인을 구분하여 출입을 엄격히 제한합니다. 그래야 분위기 좋은 독서실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 독서실은 ‘침묵이 금이다’를 강조하여 볼펜 떨어지는 소리,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 심지어 책장 넘기는 소리조차 예민하게 들리도록 만듭니다.
  • 독서실은 철저히 개인적이고 배타적이며 절대로 대화를 해서는 안 됩니다.
  • 독서실은 옆 사람을 배려한다든지 배운 것을 나누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신분상승을 위한 시험공부에만 몰두하면 그만입니다.
  • 독서실은 PC 몇 대 놓고 모든 정보소통을 차단하며, 이메일 정도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  바야흐로 독서실엔 ‘문화’가 있을 리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뿌리박힌 ‘독서실 정서’가 꿈틀 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에 따라 저와 직원들은 우리 도서관을 ‘독서실 정서’가 아닌 새로운 ‘도서관문화’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공도서관은 이렇습니다.

  • 공공도서관은 시험 공부하는 학생보다는 ‘소속이 없는 사람’을 위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일단, 중고생들은 입시제도의 포로가 되어 책 읽을 시간도 없거니와 아무리 도서관에 와서 책 읽으라고 외쳐도 오기 힘듭니다. 시험기간이 되면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도서관에 좌석이 있는 줄 알고 엄청나게 오긴 합니다만 모두가 실망하고 갑니다. 공공도서관 입장에서 교육문제를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어 이 자리에서는 좀 피하고 싶습니다. 그 문제는 <학교도서관>과 <사서교사>가 담당해야 할 몫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염두에 두는 ‘소속이 없는 사람’은 우리 사회의 조직이나 집단 등에서 소외된 사람을 뜻하고 더욱이 소속이 없기 때문에 도서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분을 말합니다. 자영업자, 프리랜서, 작가, 취업 ․ 창업 준비생, 노인, 전업주부, 검정고시 도전하시는 분, 제도권 학교가 싫어 혼자 세상공부를 하려는 청년학생, 사무실이 없는 분, 직장은 있으되 도서관이 없는 곳에 근무하시는 분 등등 알고 보면 우리 사회에는 소속이 없는 분이 정말 많습니다. 적어도 우리 도서관은 그런 분들을 위한 知的 살림과 영혼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합니다.


  • 그분들이 의지할 곳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분들의 知的살림에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작정입니다. 우리 도서관에 없는 책과 자료를 이용을 할 수 있도록 경희대학교 도서관과 어렵게 협정을 맺은 이유도 바로 소속이 없는 분들을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소속이 없는 분들이 대학도서관의 방대한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그나마 우리 도서관이 자료 중심의 도서관을 표방한 것을 실천한 것이라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는 희망합니다!

  • 우리 도서관에서 창업 준비를 위한 분들이 가령, <창업아이템 창업노하우/ 이영직 지음>이나 <친절한 창업 교과서/ 심재후 지음>, <독서노트: 창업자/ 공병호 지음> 같은 책을 읽거나 <월간 창업과 프랜차이즈>같은 잡지를 보고 <(처음 시작하는)사업계획서 작성법/ 고인곤 지음>을 참고해서 꼼꼼히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사업에 성공하시기를 희망합니다.
  • 우리 동대문구의 자랑이자 어린이들의 친구인 이상교 동화작가님 같은 분이 우리 도서관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만들어 세상의 많은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출판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한 작업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  회의실도 없는 영세한 기업체의 사장님과 직원들이 <독서경영= 讀書經營/ 박희준; 김용출; 황현택 [공]지음>이라는 책을 함께 읽고, 우리 도서관 세미나실을 이용하여 더 좋은 사업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한 생산적인 회의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제도권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우리 도서관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보고 싶은 영화도 보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민주시민으로 성숙해 가기를 희망합니다.


  •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갈 형편이 안 되거나 갈 곳이 없는 우리 아이들이 도서관에 와서 어른들의 보살핌으로 안전하게 놀고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하면서 절대로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도서관에서 기다리는 엄마들이 내 아이 뿐만 아니라 남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건강한 자기계발을 위해 책도 빌려보고 <엄마의 욕심이 아이를 망친다>라는 강좌도 들으면서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자기계발을 위해 우리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인문학강좌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좀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를 희망합니다.


  • 집 밖을 나서면 갈 곳이 없는 노인들이 황혼녘이 되도록 서성대지 말고, 도서관에 오셔서 컴퓨터도 배우고 활자 큰 책도 읽으면서 요즘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켜도 보고 건강하게 생을 지내시기를 희망합니다. 


  • 도서관을 이용하는 모든 분들이 자리를 독점하기 보다는 자리를 비울때는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내어주기도 하고 서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에 대해서 가끔 대화도 하고, 눈인사로 서로를 배려해 주며 배운 것에 대해서는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주민들이 자료실 내에서 떠들거나 핸드폰 통화를 하는 등의 ‘개인의 편의’와 ‘공공의 편의’를 구분하지 않음으로 해서 우리 직원들이 지식 및 학습정보 촉진자가 아닌 단순 독서실 관리인으로 전락하지 않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 우리 도서관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필요한 것이 있거나 불편한 것이 있으면 그냥 익명성을 앞세우거나 관공서에 대한 불신으로 대하지 않고, 지나가는 직원 아무에게나 편하게 말을 걸어 주기를 희망합니다. 


지역 주민 여러분들께서 우리 도서관을 동대문구의 명물이 되고 한국의 명품 도서관을 희망하신다면 무엇보다 ‘독서실정서’가 아닌 진정한 ‘도서관 문화’를 만드는데 동참해 주시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 




오 이 관장님 좀 짱인듯 ㅋ속시원하다

by 핑크문 | 2008/07/22 11:23 | 도서관 사서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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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글루미젠 at 2008/08/21 12:57
멋지네요. 저도 평소에 도서관에 대해서는 외국과 비교에서 항상 아쉬운 생각이 많았었는데, 운영하시는 분의 마인드가 이렇다면 아무리 작은 외침이라도 앞으로 희망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은 노력이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걸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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